어문인물
백수 정열모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08-09-19- 첨부파일
대종교 동료 직원들과 함께한 정열모 선생
(사진 앞열 오른쪽 흰 두루마기 인물)
백수 정열모(白水 鄭烈模, 1895~1968) 충북 보은군 회북면 중앙리 출생. 회인 보통학교를 마치고 조선어강습원 고등과 제2회 수석 졸업하였다. 일본 와세다 대학 사범부를 졸업하고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한글맞춤법 통일안, 표준어 사용, 외래어 표기 등을 연구함. 대종교 항일 비밀결사체인 귀일당을 이흥수, 안호상, 이극로, 맹주천, 엄천주, 이세정 등과 주도하였다. 김천 고등 보통학교 2대 교장에 을 취임하고 1942년 함흥 영생고등학교의 학생 박영옥의 한 국말 사용하는 것이 발단이 되어 그해 10월10일 조선어학회 주모자로 일본 특무경찰에 치안유지법과 내란죄로 안재홍, 최현배, 이희승, 이극로 등과 검거되어 함흥경찰서 지하감방에서 혹독한 고문을 담당검사 야오기의 주도하에 조선인 고문기술자 오오하라(주병훈), 야스다(안정욱), 시바다 등으로부터 받고 함흥형무소에 3년간 수감되었다. 1946 년 국학 전문학교 학교장 , 한글문화사 대표 및 숙명여대 초대 문과대학장을 역임하고 김규식이 주도하는 민족 자주연맹 서울시 부위원장에 피선되었다. 1947년 5월 대종교 원로회의 결의에따라 홍익대 설립에 이흥수, 정일 등과 뜻을 모으고 1948년 8월 초대 홍익대학관 초대 학관장 , 1949년 6월 홍익대학 초대 학장에 취임하였다. 1949년 12월 자유당 독재정권의 민족세력 숙청의 일환으로 벌어진 홍대프락치 사건으로 교수, 학생 등 54명이 철도 경찰대, 헌병대로 피검되어 모진 고문과 박해를 당하자 재단과 학교를 구하고자 용퇴하고, 그후 대종교 원로원의 총책임자로 재임하며 한글학회 이사를 역임하던 중 6·25 동란 북으로 납북된 후 김일성대학 국문과 교수, 북한 사회과학원 원장, 조국평화통일 상임위원등을 역임하며 북한 조선어학의 기초를 이극로, 유열 (대종교인 홍익대 창설국문과 교수로 6,25 동란중 납북, 김일성대 석좌 교수역임) 등과 같이 만들었다. 1967년 평양에서 서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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