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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학연구원

"대종교, 하늘 땅 사람"이 하나 되는 생명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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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天眞)의 내력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2-04-25

동사유고(東事類考)에 의하면, 솔거는 두메산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그림공부를 하고자 하였으나 너무도 가난하고 두메산골에 살았기 때문에 스승이 없어 배우지도 못하고 끝내 성공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가서는 칡뿌리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들에 나가 밭을 맬 때면 호미 끝으로 모래에 열심히 그림공부를 하면서 밤낮없이 명화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진심으로 한배검께 빌었다.

 

이렇게 공부하고 빌기를 1년이 지나는 어느 날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신인 단군이다. 네 지성이 이 신필(神筆)을 주도록 느끼게 하였노라"하고는 사라지셨다. 그는 이내 황홀히 감격하고 감읍하여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니 유명한 화가로 대성하였다.

 

솔거는 한배검 신은에 감명하여 그 꿈에 뵈었던 단군어진 천본을 그렸고, 고려의 평장사(平章事) 이규보가 제찬(題贊)한 시에 이르기를 "고갯마루 밖의 집집마다 있는 한배검 모습(神祖像)은 그 무렵 거의 절반이 저 더없이 뛰어난 명인(솔거)의 작품"(嶺外家家神祖像 當年半是出名工)이란 기록이 있다.

 

대교 중광 다음해인 개천 4367(1910)315일 어천절(御天節)이었다. 시각은 자()시초(11시경)쯤 되었는데 한 노인이 어천절 경축행사를 마치고 삼법수행(三法修行)을 하면서 밤을 지새우고 계신 홍암대종사를 찾아왔다.

 

강원도 명주군(현 강릉시 옥계면) 석병산(石屛山해발 1,055m)에서 왔다 하며 노인은 큰 키에 흰 눈썹은 말총같이 억센 것이 위로 치켰고, 걸걸한 음성으로 성명은 고상식(高上植)이요, 공공진인(空空眞人)이라고도 부르며, 자신의 천수는 아흔 아홉인데 이 보물을 전해 받을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네 해를 더 살면서 기다리다보니, 백 세살이나 되었다고 말하였다. 공공진인은 황금빛 비단에 싼 아주 오래된 초상화 한 폭을 전하면서 내 집에서 대대로 모셔온 천진이요. 이 초상화는 신라의 명공 솔거가 그려서 지금까지 전해온 유일본이니 잘 모시도록 하시오."하고는 일어선다. 대종사는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시려고 일어서십니까?"하고 붙들며 만류하였으나, 가야 한다고 기어이 나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그 진상 여부를 몰라 모시지 않고 있었다. 그 후 어느 날 대종사의 꿈에 한배검께서 현몽하셨는데, 공공진인이 전한 그 초상화대로의 모습이시며, 눈부신 광채를 발하시고 그윽한 향기가 자욱했다. 이윽고 한배검께서는 미소 지으시면서 무엇을 머뭇거리느냐, 나를 모시어라. 그러면 마음마다 평화요, 집집마다 경사요, 나라마다 영광이 오리라"하시는 것이 아닌가!

 

대종사께서는 이 영몽(靈夢)을 얻으시고 그 당시 유명한 지백련(池白蓮) 화백에게 그대로 모사(模寫)케 하여 개천 4367(경술1910) 821일에 천진을 시봉(始奉)하였다. 개천4371(1914) 513일 총본사가 만주 화룡현 청파호(靑坡湖)로 망명이주한 뒤 이 천진은 강호석(姜湖石) 도형이 대교 남도지사에서 봉안하여 오다가 개천4371(1917) 9월에 남도본사를 정폐(停廢)하자 일제의 탄압을 피해 비장하여 모시었다 해방 후에 호석 도형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단군전(개천궁)을 지어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호석 도형은 이 천진을 사진 본으로 하여 숨겨 모시거나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왜적의 탄압으로 갖은 역경을 거치면서도 대교만을 신봉하고 조국광복을 위하여 신명을 바쳐왔다.

 

대종교 총본사에서 봉안하고 있는 천진은 개천4403(병술년1946) 총본사가 만주로부터 환국한 뒤 단애종사를 비롯한 원로들의 공의에 의하여 부여 단군전에 봉안하고 있는 천진을 당시 대가였던 지성채(池盛彩) 화백(池白蓮화백의 아들)으로 하여금 크게 모사(模寫)케 한 천진으로서 개천 4405(1948)년 대한민국 수립과 동시에 초대문교부장관 안호상박사가 1949년 국회의 동의를 받아 이 천진이 대한민국 국조(國祖) 표준본으로 공인되었다.

 

개천4432(1975)에 본 천진영정을 토대(표본)으로 삼아 새로이 입체성상을 제작하였다. 정부에서는 개천4432(1976) 69일에 성상고증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동 614일자로 문화공보부 장관이문화1740-8790로써 국조단군표준성상임을 승인하는 동시에 앞으로 대종교총본사에서 제작한 성상만을 존중한다는 확인(문화1740-19226)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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