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대종교인물

"대종교, 하늘 땅 사람"이 하나 되는 생명의 종교

항일인물

몽호 황학수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8-10-22

첨부파일

황학수.jpg


황학수(黃學秀, 1879∼1953)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원(昌原). 일명 이국현(李國賢).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충북도 제천 출신.
1898년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참위(參尉)에 임관되었다. 그뒤 부위(副尉)로 승진되어 육군유년학교(陸軍幼年學校)의 교관이 되었다. 1907년 8월 군대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해산당하자 고향으로 낙향하여 동지와 협력, 동명학교(東明學校)를 설립하고 육영사업에 전념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에 참가하였다.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및 군무부 비서국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임시정부의 활동이 혼미해지자 1920년 남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참모장과 중앙집행위원 및 군사부장(軍事部長)을 역임하면서 무장독립투쟁에 헌신하였다.
1923년 북만주 신민부(新民府)의 중앙집행위원 및 참모부장에 취임하여 활약하였고, 1924년에는 신민부 군사부장으로 활약하면서 군민의회(軍民議會)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고 한족동향회(韓族同鄕會)이사와 한국독립당 집행위원과 한국독립군 사령도 지냈다.
1938년에는 다시 임시정부 군사위원에 취임하였다가 1939년에 임시의정원의원에 재선되었으며,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도 겸하였다. 임시정부 군사특파원으로 산시성(陜西省) 시안(西安)에 주둔 중 1941년 광복군사령부가 시안에 설치됨으로써 광복군특별당부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뒤 충칭(重慶)에 가서 임시정부 국무위원이 되었으며 생계부장(生計部長)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이전글
경부 신백우
다음글
포석 나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