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물
일해 이세정(교육)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08-09-22- 첨부파일
이세정(李世楨, 1895∼1972) 교육자·체육인. 대종교 비밀결사원. 호는 일해(一海). 서울 출신. 철농 이기우(鐵農 李基雨)는 교육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세정은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의 제자로 한글학회 임원과 세종대왕기념 사업회회장을 지낸 진명여고 교장이었다. 철농이 서예가이자 전각가로 성장하게 된 배경도 그의 가계와 무관하지 않다. 철농의 글씨공부의 사부였던 무호 이한복은 부친이 교장으로 있던 진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었으니, 그의 첫 한묵 인연은 이렇게 맺어진 것이다. 그의 나이 15세(1935)때의 일이다. 당시 이한복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한국 서화계의 엘리트로서 전각계의 태두 오세창과도 교유하고 있었던 터로, 1944년 그를 위창에게 소개, 정식 제자가 되었다. 철농이라는 호도 전각의 스승인 위창이 내린 것이다. 1945년 9월 '한국서예인의 합심과 민족예술운동'을 목적으로 조선서화동연회(회장 손재형)가 창립되고, 그 이듬해에 8월 해방전람회가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화랑에서 개최되었을 때, 오세창, 안종원, 김용진 등 원로들을 비롯하여 서예가로는 손재형, 김기승, 황용하, 원충희 등과 더불어 이기우도 참가하고 있다. 이것이 철농의 공석적인 서단활동의 시작이 된 셈이다. 초기의 철농 전/예는 무호의 영향을 받았으나 위창으로부터 전각을 배우고 나서는 전각의 장법에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 현대적 조형어법을 터득하게 된다. 전각 역시 처음에는 위창을 통해 오창석을 배우고 진한을 거쳐 자성일가했다. 필자가 직접 참관한 1972년 이기우 陶刻書藝展은 도자와 전각 그리고 불이라는 자연이 만나 이루어낸 철농예술의 극치를 이루었던 감명 깊은 전시였다. 저서로는 <鐵農印譜>(제3권1972)가 있다
1911년에 매동고등보통학교(梅洞高等普通學校), 1914년에 경성고등보통학교 부설 교원양성소를 졸업하였다.
1917년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문학부를 졸업한 뒤 1920년에 매동고등보통학교 교원과 경기도교원양성소 강사, 1923년에 경기공립상업학교 교사를 거쳐 1925년부터 36년간 진명여자중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일한 뒤 정년퇴임하였다.
그뒤 1972년까지 일성학원 설립자로서 일성고등공민학교 교장으로 근무하였으며, 은석학원·숙명학원·인창학원·경기학원·화산학원·인하학원·향림학원·송산학원·문성학원·명성학원·강문학원·대동학원·동도학원 등의 학교법인 운영에 임원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서울특별시교육회·대한교육연합회·교원공제조합·문교재단연합회·중앙교육위원회·중앙교육연구소·국정교과서주식회사·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연합회·사학진흥위원회·서울대학교기성회·세계교육자대회 등 각종 교육단체에 설립자 또는 임원으로 활동하였고, 한글학회임원·국어심의위원·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체육활동으로는 정구인의 단체인 금강구락부 창설을 비롯하여 1925년에 조선정구협회를 조직하였고, 1945년에는 조선체육동지회를 구성하여 조선체육회(지금의 대한체육회)를 재건하는 데 공헌하였으며, 대한연식정구협회장을 역임하면서 연식정구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60년 10월 아시아연식정구대회에 단장으로 참가하였고, 문교부체육심의위원·올림픽대책위원·서울신문사체육상심사위원장·체육장학위원회 부위원장·대한체육회 고문 등을 역임하면서 학교체육 및 사회체육의 발전에 힘썼다.
1957년에 교육공로표창상(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1969년에 대한민국체육공로상, 1971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이세정의 子- 철농 이기우(1921∼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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