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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교변, 기소문 번역문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3-01-19- 첨부파일
기소역문(起訴譯文)
천봉(天峯) 강성모(姜聖模)
기소장(起訴狀)
좌기(左記) 피고(被告)사건에 대하여 공소(公訴)를 제기하오며 귀원(貴院)의 공판 수속에 의한 심판(審判)을 하시옵기 자(玆)에 공소를 제기함.
강덕(康德) 11년 2월 19일
목단강고등검찰청(牧丹江高等檢察廳)
검찰관(檢察官) 나까무라 요시오(中村義夫)
목단강고등법원(牧丹江高等法院) 어중(御中)
치안유지법위반(대종교 관계)
윤세복(尹世復), 김영숙(金永肅), 윤정현(尹珽鉉), 오근태(吳根泰), 이용태(李容兌), 최관(崔冠), 나정문(羅正紋), 이현익(李顯翼), 이재유(李在囿)
대종교(大倧敎)는 그 전 이름을 단군교(檀君敎)라 칭하고 명치(明治)42년 음 정월 15일 조선 경성부(京城府)에서 나철(羅喆)이 자고(自古)로 조선민족간의 신앙에 있어서, 조선민족의 시조이며 국조(國祖)라고 전승하여 단군(檀君)을 숭봉하며 이에 귀일(歸一)함으로써 조선민족 정신으 순화통일(醇化統一)과 조선민족 의식의 앙양을 도모함과 동시에 조선민족 결합의 강화에 의하여 독립국가로서 조선의 존속(存續)을 목표로 하고, 다수 동지와 함께 결성하여 스스로 제1세 교주(敎主)라고 한 단체로서,
그 교리(敎理)라는 것은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천신(天神)이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시 지금(강덕 10년)으로부터 사천사백 년 전 태고에 천신이 인간으로 화하여 만선국경(滿鮮國境) 백두산(白頭山)에 강하한 이래 125년간 만선(滿鮮)에 널려 있는 삼천단부(三千團部)의 부민(部民)을 교화시킨 후 배달국(倍達國)을 수립하고 그 나라 임금 단군(檀君)이 될새, 그 영역(領域)은 동 창해(滄海·일본해), 서 사막(沙漠·흥안총성), 남 영해(瀛海·동지나해), 북 흑수(黑水·흑룡강)에 이르렀으며 93년간 인민을 통치한 후 승천하였고, 또 단군은 오훈(五訓)으로써 인민을 가르치며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의 오사(五事)로써 인민을 다스려서 질서 있고 또 평화로운 이상국가를 실현하므로 인민은 천신을 숭경(崇敬)하며 단군에 열복(悅服)하여 안락평온의 생활을 하여 왔으므로 그 후예들이 조선민족이라면 단군은 조선민족의 시조이며 국조이며 또 교조(敎祖)이라 하여 단군의 소위 오훈(五訓)은 천훈(天訓)·신훈(神訓)·천궁훈(天宮訓)·세계훈(世界訓)·진리훈(眞理訓)으로 이루었으며 진리훈에는 인물이 신(神)의 창조로 성(性)·명(命)·정(精) 삼진(三眞)을 받았고 또 한 번 지상(地上)에 태어날 제 심(心)·기(氣)·신(身) 삼망(三妄)을 얻어서 감(感)·식(息)·촉(觸) 삼도(三途)를 짓게 되므로 이것을 지(止)·조(調)·금(禁) 삼법(三法)으로써 수양하면 삼진(三眞)에 귀일(歸一)하여 신(神)에 화함을 얻는다고 하며, 또 단군교도 실천강령(實踐綱領)이라고 하여 오대종지(五大宗旨) 경봉천신(敬奉天神)·성수영성(誠修靈性)·애합종족(愛合種族)·정구이복(靜求利福)·근무산업(勤務産業)을 만들어서 조선민족은 단군을 신앙하여 신으로부터 받은 삼진(三眞)의 영성(靈性)을 닦아서 신에 화하도록 힘쓰는 동시에 이상국가인 배달국을 지상에 재건할 것이라고 하여 오던 중 동43년 7월에 나철은 단군교를 대종교(大倧敎)라 개칭하고 그 후 동년 8월 한일합병(韓日合倂)으로 조선민족이 독립국가를 상실함에 따라 대종교는 단군을 신앙함으로부터 조선민족 정신을 배양하며 조선민족의 결합을 도모하고 조선독립 의식을 앙양하며,
따라서 조선독립의 소지(素地)를 만들어 궁극(窮極)에서 조선으로 하여금 일본제국 통치권의 지배를 이탈시켜 독립국으로 하고, 또 그 독립형태를 이상국가인 배달국의 지상에 재건을 목적으로 한 단체이었으며, 제1세 교주 나철은 대정(大正) 5년 음 8월 15일 조선에서 사망하고, 그 후계자 제2세 김헌(金獻)은 동만총성영안현(東滿總省寧安縣)에서 사망한 후 윤세복(尹世復)이 동인(同人)의 유명(遺命)에 의하여 제3세 교주로 되었으며, 아국(我國·만주) 건국 후 동교의 소위 배달국 재건에 대한 조선민족의 독립은 배달구의 영역을 영토로 하고 따라서 아제국(我帝國)의 영토 전부를 탈취하며, 또 일덕일심(一德一心)의 기조상(基調上)에 처한 대일본제국 영토의 일부인 조선으로 하여금 동국의 통치권에서 이탈시켜 독립국으로 할 것을 목적으로 한 단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제1 피고인 윤세복(尹世復)
조선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내 1동(一洞) 성북리(城北里) 상류(上流) 농가에서 출생하였고, 7세로부터 23세까지 한학을 습득하고 명치 36년으로부터 동 41년까지 밀양읍 사립신창학교(私立新昌學校)와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협성학교(協成學校) 교원으로 봉직한 후, 동 42년 3월에 대구부 토지조사국 측량기수로 종사하여 왔다.
동 37년, 38년의 일로전역(日靈戰役) 후에 한국은 대일본제국의 보호국으로 되어 국내에는 일한합병을 희망하는 친일파와 차(此)를 대항하는 반일파의 항쟁을 양출(釀出), 국정이 혼돈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앙에 있어서도 재래 유(儒), 불(佛)의 신앙과 및 신래(新來) 기독교의 끼친 영향이 컸으므로, 기간(其間) 조선고유의 신앙에서 재생하려는 풍조도 농후하야 복잡무질서한 시기에 제회(際會)하매 우국(憂國)의 정을 금할 수 없었고, 조선민족에 의한 조선독립국가의 존속을 힘써 기념(祈念)하는 때이다.